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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7년의 밤 - 정유정

by OasiStock 2021. 6. 12.

평소 tvn의 '유퀴즈 온 더 블럭'을 애청하는데(유퀴즈의 방식대로라면 '자기님'이다) 지난 주였던가? 그 전 주였던가?

정유정 작가가 패널로 나왔었다.

소설책은 자주 읽는 편이 아니라 솔직히 유퀴즈를 보기 전까지는 정유정 작가 자체를 아예 몰랐었다.

'7년의 밤'이라는 것도 장동건 나오는 영화라고만 알았지,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개인적으로 무협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유퀴즈를 계기로 정유정 작가의 소설에 관심이 생겨 '7년의 밤'을 전자책으로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7년의 밤 표지사진

정유정 작가는 유퀴즈에서 본인 글의 특징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아볼 수 있도록' 자세한 묘사를 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정말 그랬다.

그런데 책의 초반부에서는 그러한 점이 오히려 이야기에 집중하는 데에 방해가 되었다.

평소 간결한 문장을 좋아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7년의 밤의 문장이 간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세세한 묘사가 주욱 이어지니 정작 지금 무슨 이야기 중이었는지를 깜빡깜빡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인물들 간의 관계와 핵심사건들이 펼쳐지면서부터는 그 '세세한 묘사'가 정말 강점으로 다가왔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치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은 영화화가 될 수밖에 없고, 또 영화화 하기에 너무나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 속에서 펼쳐보아왔던 장면들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펼쳐지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어졌다.

아니, 오히려 영화의 장면들을 보면서 느껴지는 체감도가 글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체감도보다 떨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영화 '7년의 밤' 포스터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사건은, 국내에서도 아주 떠들썩했던 살인 사건, 한 음주운전자가 아이를 치는 사고를 내고 나서 직후에는 병원에 데려갔다가 병원에서 나온 뒤에는 자신의 음주운전 사실이 알려질까봐 아이를 공기총으로 살해하고 야산에 암매장한 사건이다.

 

작가는 이 사건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감추기 위한 살인'이라는 키워드를 얻고, 거기서 '음주운전 사고를 감추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남자의 주변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고, 무엇을 겪었을까?' 하는 질문을 시작으로 소설을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실제 사건과 소설 속 사건은 음주운전 사고를 감추기 위한 살인 사건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혀 다른 내용의 사건이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이 겪었을 일들과 느꼈을 감정들은 아마도 소설 속 그들의 것과 비슷했을 것 같다.

소설 속 주인공인 '현수'는 참 답답하고 어리석으면서도 불쌍한 사람이었다.

내가 현수 같은 남편, 현수 같은 아빠가 아니라는 게, 그리고 내 아내가 소설 속 현수의 아내 은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게 너무나 다행스럽고 감사했다.

그리고 현수의 아들 서원과 내 아들내미가 자꾸 겹쳐보여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내 아이가 그런 무지막지한 일을 겪게 된다면이라고 생각하는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아리고 먹먹해졌다.

 

소설 속 이야기니까 그렇겠지만, 다 읽고 나니 주인공 현수에 대해 '그럴 수 있었겠다' 하고 공감하게 되고, 또 동정하게 되었다. 이야기 내내 현수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동기가 부여되기에.

 

작가는 어쩌면 어떤 사실 뒤에는 우리가 모르는 진실이 있고, 그 진실을 알기 전에 쉽게 사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적어도 진실을 알게 되고 나면 사실에 대한 판단이 어려워진다는 정도의 말을 하고 싶었을 수도. 책에 기록된 '진실과 사실 사이'라는 문구에서 주는 느낌도 그러했다.

 

나도 사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현수에게 공감하면서, 현수의 아들 서원에 대해 안타까워 하면서, 살인사건이라는 사실 뒤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살인사건이 흉악하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희생 정도로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사건에 대해 다시 찾아보면서 '아, 이야기에 홀려 가해자에게 공감하게 되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에 '이야기의 무서움'에 대해 소설과는 별개로 생각해봤다.

 

엄연한 사실은, 현수는 살인자라는 것인데 그 사실 이면에 사연들을 알게 되니 '나라도 그랬겠다' 라고 생각이 되는 것이 조금 섬뜩하기도 하다.

만약 어떤 흉악범죄에 대해서도 그럴듯한 뒷 이야기가 받쳐지게 되면 그 범죄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흐릿해지고, 피해자에 대한 구제도 그만큼 무뎌지게 될 수도 있겠다는 데에서 오는 무서움이랄까?

그래서 그런 면에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건이 아닌 이상, 언론이나 대중매체에서 범죄자의 성장배경이라든지, 가족들의 상황이라든지, 그 범죄자를 우리와 동류로 느끼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리소설(7년의 밤이 정확히 추리소설인지는 모르겠지만)은 줄거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읽어야 그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기에 아직 7년의 밤을 읽지 못한, 이제 읽어볼까 마음 먹은, 이 포스트를 보는 예비 독자들을 위해 독서 후기에 줄거리는 배제하고 감상 위주로만 적어보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읽고 싶은 스릴러 영화 같은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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